본문 바로가기

게임

[킹덤 컴 딜리버런스] 책 - 보헤미아 왕국

728x90
728x90

우리 장엄한 역사의 가장 오래된 기록에 따르면, 보헤미아의 땅은 비옥하고 풍요로워 많은 이들의 피난처가 되었으며, 아름다움과 풍족함에 있어서 다른 나라에 비해 월등했다. 첫 번째 천년기가 끝나기 전에는 대모라비아 제국과 통합되지 않은 보헤미아 공국이 공존하였는데 후자는 프르셰미슬 가문이 통치했다. 이 땅의 수호성인인 성 바츨라프는 프르셰미슬[각주:1]가문 출생이며, 마찬가지로 프르셰미슬 성씨인 그의 동생 볼레슬라프 1세는 권력을 공고히 하고 이 땅을 통일하였다. 그의 아들 볼레슬라프 2세는 프라하의 교회를 소교구에서 교구[각주:2]로 승격하여 신성 로마 제국에 보헤미아가 편입되었으나 프르셰미슬 가문의 어느 군주도 아직까지는 왕의 칭호를 받지 못했다. 첫 번째로 왕의 칭호를 받은 이는 브라티스라프 2세로 그는 밀라노 공격 당시에 황제를 원호한 공을 인정받아 왕위를 하사받았다. 그러나 그의 후손들은 그러지 못했으며 훗날 오타카르 1세가 왕위를 쟁취해내기 전까지 왕의 신분이 아닌 공작의 신분으로 통치했다. 왕위를 얻은 오타카르 1세가 그 후에 모라비아를 차지하는 것은 당연지사였겠으나 그는 그러지 않았고, 현명하고 평화롭게 그의 아들에게 모라비아 변경백위를 물려주었다. 모라비아 변경백령은 후에 신성 로마 제국의 땅이 아니라 보헤미아 왕국에 속하는 영토가 되었다.

하지만 프르셰미슬 왕조는 오래가지 못했고, 살인자의 손에 들린 칼에 위대한 왕조는 죽임을 당하고 빈 왕좌는 룩셈부르크 가의 손에 떨어지게 되었다. 룩셈부르크 가문은 다른 여러 영토를 보헤미아 왕국에 병합하여 나라의 강역이 거의 북해에서 지중해까지 닿게 되었다. 보헤미아의 가장 명명 높은 왕이자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인 카를 4세는 그 치세에 있어서 모든 영지에 큰 부와 풍족함을 누리게 해 보헤미아의 명성이 널리 퍼졌고, 프라하 교회를 주교구에서 대주교구로 승격시켰으며, 프라하 대학과 구시가지를 연결하는 새로운 다리 및 새로운 거주구 건설을 지시했다. 프라하 대학은 많은 지식인을 배출하였으며, 프라하는 제국의 중심이 되었다.

카를 4세의 장자 벤체슬라스 4세는 풍족함과 막대한 부를 누리는 땅을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았으나 그는 현명한 통치보다는 창녀와 음주에 더 전념했으며 주교들 사이의 관계를 가르고, 로마에도 등을 돌리게 했다. 그의 군주로서의 무능함은 극에 달하여 아버지의 재능을 물려받은 이복동생인 지기스문트는 그를 감옥에 가두고 폐위했다.

주석: 여기에 벤체슬라스왕에 대해 적인 이야기는 뻔뻔하기 짝이 없는 거짓말이다. 지기스문트 그 여우 같은 놈은 창녀의 자식에, 이 땅의 배신자다! 벤체슬라스 왕이야말로 진정한 국왕이시다!

 


  1. 프르셰미슬 왕조(체코어: Dynastie Přemyslovců)는 9세기부터 1306년까지 이어진 보헤미아의 체코인 왕조이다. [본문으로]
  2. 가톨릭교회를 지역적으로 구분하는 한 단위. 주교(主敎)를 중심으로 하여 대주교구, 주교구 따위가 있다. [본문으로]

 

728x90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