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절 80주년, 러시아의 스탈린 동상 복원 움직임
러시아에서 다시 스탈린 동상을 복원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됐다. 최근 모스크바 중심부 타간스카야 지하철역에 1961년 철거됐던 스탈린 부조 조형물이 복원되었다. 이 조형물은 ‘인민의 사령관에게 바치는 감사’라는 이름으로 1950년에 처음 설치되었으며, 흐루쇼프의 탈(脫)스탈린화 정책 속에서 철거된 바 있다. 60여 년 만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건축사학자 알렉산드르 지노비예프는 이 복원이 원본과 재질, 색상, 장식 요소 등이 달라 '역사적 복원'이라기보다 '이념적 제스처'에 가깝다고 평가했어.
이번 복원은 단순한 과거 유산의 재현이 아니다. 러시아 정부, 특히 푸틴 대통령의 역사 해석과 국가주의 강화 전략이 이면에 깔려 있다. 스탈린은 20세기 소련의 산업화와 제2차 세계대전 승리의 상징이면서도 동시에 수백만 명을 숙청한 독재자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그런 인물을 다시 기념하는 행보는 러시아 내부에서도 극명한 의견 대립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실제로 스탈린 동상 복원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푸틴이 집권한 이후 러시아 전역에 100개가 넘는 스탈린 동상이 다시 세워졌으며, 2014년 크림반도 병합 이후 그 수는 더욱 늘어났다. 최근에는 5월 9일 제2차 세계대전 승리(전승절) 80주년을 앞두고 푸틴 대통령이 '볼고그라드' 국제공항의 명칭을 ‘스탈린그라드’로 바꾸는 법안에 푸틴 대통령이 직접 서명하며, 상징적인 조치들을 이어가고 있다. 또한, 도시 전체의 명칭을 '스탈린그라드'로 되돌리는 방안에 대해 지역 주민들의 의견을 존중하겠다고 밝혔다.
푸틴 정부는 스탈린을 “위기 상황 속에서 국가를 이끈 강력한 지도자”로 해석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과 서방과의 갈등이 장기화되면서, 내부 결속과 애국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강한 지도자의 이미지를 강조하고 있다. 이는 역사 재서술을 통해 현재 정권의 정당성을 강화하려는 시도로도 해석된다.
하지만 러시아 사회 전반이 이를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야당과 인권 단체는 이러한 움직임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으며, 일부 시민들은 “숙청과 공포의 상징을 되살리는 것은 반인륜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복원된 조형물 앞에서는 반대 시위가 열렸고, “푸틴도 언젠가 동상에서 끌어내려질 것”이라는 메시지를 담은 피켓이 등장하기도 했다.
스탈린 동상 복원은 단순히 과거를 기념하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현재 러시아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신호이기도 하다. 역사적 인물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는, 결국 지금 우리 사회가 어떤 가치 위에 서 있는지를 반영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스탈린 동상 복원 움직임에 대한 러시아 시민들의 반응
현대 러시아에서는 스탈린 동상을 복원하거나 새로 설치하려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1950-60년대 탈스탈린화로 대거 철거되었던 스탈린의 흉상과 부조(浮彫) 등이 다시 공개 공간에 등장하면서, 이에 대한 러시아 시민들의 여론과 반응도 뜨거워지고 있다. 최근 23년 사이 실시된 여론조사들은 스탈린에 대한 인식 변화를 뚜렷이 보여주고 있으며, 트위터, VK(브콘탁테), 텔레그램 등 SNS 상의 논쟁에서도 스탈린 동상 복원에 대한 찬반 의견이 분출하고 있다.
여론조사로 본 스탈린 동상 복원 찬반 여론
러시아인들의 스탈린에 대한 평가와 동상 설치 지지도는 과거에 비해 크게 우호적으로 변화했다. 독립 여론조사기관 레바다 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2021년경에는 절반에 가까운 러시아인이 도시 내 스탈린 동상 설치에 찬성하거나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당시 조사에서는 약 48%가 스탈린 기념비 건립에 찬성했고, 반대는 약 20%에 불과했으며, 나머지는 무관심을 보이는 상태였다. 이러한 수치는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스탈린 동상 복원에 대한 반대 여론이 우세했던 것과 대비된다. 실제로 1998년에는 응답자의 60%가 스탈린에 대해 부정적 감정을 표했으나, 2023년에는 불과 8%만이 부정적이라고 답했을 정도로 분위기가 바뀌었다. 최신 여론조사(2023년 레바다 센터)에서는 응답자의 47%가 스탈린을 “존경한다”고 답했고, 16%는 “동정하거나 흠모한다”고 답했다. 반면 “부정적 감정”을 표한 응답자는 앞서 언급했듯 한 자릿수에 그쳤다. 이처럼 동상 복원에 대한 거부감도 세대 교체와 함께 줄어들고 있으며, 스탈린을 긍정 평가하는 비율은 지속적으로 상승 추세를 보이고 있다
스탈린에 대한 향수와 재평가 흐름은 지역·세대별로 편차를 나타낸다. 여론조사 분석에 따르면, 젊은 층이나 소도시·농촌 거주자, 그리고 고등교육을 받지 않은 계층에서 스탈린 기념사업(동상이나 ‘스탈린 센터’ 박물관 등)에 대한 지지 성향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난다. 반면 대도시 거주자나 고학력층, 그리고 40대 이상 연령대에서는 스탈린 추앙 움직임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많다. 예를 들어 공산주의 성향이 강한 알타이 지역(바르나울 등)에서는 스탈린 기념 시설 개설에 큰 논란이 빚어지지 않았으나, 모스크바나 상트페테르부르크 같은 자유주의적 성향이 강한 도시였다면 훨씬 큰 공분을 일으켰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실제 바르나울에서 2023년에 문을 연 “스탈린 센터”에 대해서는 많은 주민들이 못마땅해하면서도 공개적으로 항의한 사람은 한 명(정교회 사제 미쿠신)에 불과했을 정도로, 지역별 분위기에 차이가 나타났다. 한편 제2차 세계대전 승전을 직접 겪은 고령층이나 전쟁 영웅을 자처하는 참전세대의 경우, 여전히 스탈린을 강국 승리의 상징으로 기억하며 동상 복원을 지지하는 경향이 강하다. 2023년 볼고그라드(옛 스탈린그라드)에서 지역 참전용사 단체가 도시명을 다시 ‘스탈린그라드’로 바꾸자고 제안하고, 이에 주정부가 공론화 절차에 들어간 사례도 이런 정서를 보여준다
눈여겨볼 점은 푸틴 집권기 들어 스탈린 기념물의 부활 추세가 두드러졌다는 것이다. 한 러시아 매체의 집계에 따르면 전국에 남아있는 약 110개의 스탈린 기념비 중 90%가 푸틴 재임 시기에 건립되었으며, 특히 2014년 이후에는 새로운 동상 설치 속도가 이전보다 두 배로 빨라졌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국가 주도의 이러한 ‘이미지 세탁’ 정책이 여론 변화의 배경이라고 지적한다. 실제로 지난 10여 년간 정부 차원에서 스탈린을 “효과적인 경영자”이자 전쟁 영웅으로 포장하는 작업이 진행되었고 매년 승전 기념일(5월 9일)마다 옛 스탈린그라드 이름 부활이나 동상 제막식 같은 이벤트가 이어지면서 국민 정서도 이에 영향을 받아온 것으로 보인다. 한마디로, 국가의 역사서사 변화가 시민들의 스탈린에 대한 인식 재평가와 동상 복원 지지 확대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SNS와 소셜 미디어상의 찬반 반응
온라인 공간에서도 스탈린 동상 복원 움직임에 대한 찬반 논쟁이 활발하다. 소셜 미디어(SNS)에는 스탈린을 옹호하거나 동상 복원을 반기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예컨대 2023년 초 볼고그라드에 새 스탈린 흉상이 세워졌을 때, 현지 주민 중 일부는 텔레그램 채널 인터뷰를 통해 기쁨과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한 중년 여성은 “마침내 전 세계에서 볼고그라드를 찾는 이들이 우리의 승리를 이끈 진정한 지도자가 누구인지 보게 될 것”이라며 동상 설치를 환영했고, 스탈린 시절의 대숙청에 대해서도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거대한 탄압은 사실 존재하지 않았다고 이미 증명됐다”고 주장했다. 한 남성 주민은 아예 “스탈린은 아무런 테러(공포정치)를 행하지 않았다”고 부인하면서, 과거 숙청으로 불리는 것들은 “외부와 내부의 수많은 적들을 처리하기 위한 불가피한 어려움이었을 뿐, (잔혹한) 탄압이라고 볼 수 없다”고 옹호했다. 트위터나 VK의 친정부 성향 유저들도 “서방이 러시아를 압박하는 지금, 강력한 통치자였던 스탈린을 재평가해야 한다”는 식의 글을 공유하고 있다. 실제 모스크바의 한 30대 시민은 인터뷰에서 “내가 왜 (스탈린에 대해) 나쁜 감정을 가져야 하죠?”라고 반문하며, 스탈린을 국민을 하나로 묶은 강한 지도자이자 전쟁 승리를 이끈 인물로 찬양하기도 했다. 이처럼 온라인상에서 스탈린 복권을 지지하는 이들은 그를 사회 정의 구현자, 강한 국가 건설의 상징으로 이상화하는 경향이 있으며, “오늘날 혼란과 불안정 속에서 다시금 강력하고 정의로운 지도자를 원한다”는 바람을 표출하고 있다
반면 진보적·자유주의 성향의 시민들은 SNS와 인터넷 매체를 통해 스탈린 동상 복원을 강하게 성토하고 있다. 2025년 5월 모스크바 지하철 타간스카야 역에 스탈린 시대의 부조가 복원되어 등장하자, 곧바로 온라인과 현장에서 항의 운동이 벌어졌다. 러시아 야당인 야블코(Yabloko) 당은 즉각 온라인 서명 운동을 시작하여 “모스크바 지하철역에 복원된 스탈린 부조의 즉각 철거를 엄중히 요구한다”는 내용의 청원서를 공개했다. 이들은 청원에서 “스탈린 정권은 수백만 명의 희생에 대한 책임이 있으며, 과거의 범죄가 묵살되거나 정당화되도록 둬서는 안 된다”고 호소하며, 스탈린 미화는 현대 러시아 사회를 어둠으로 되돌릴 뿐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타간스카야 역 부조가 개장한 직후, 이를 찾아온 공산당 지지자들의 헌화 행렬 맞은편으로 정반대의 퍼포먼스도 펼쳐졌다. 일부 인권·시민단체 활동가들은 부조 앞에 꽃 대신 검은 근조 화환을 놓아 스탈린 희생자들의 넋을 기렸고, 어떤 이들은 심지어 ‘광대’ 이모티콘 그림을 부조 근처에 붙여 놓고 가기도 했다. 특히 활동가들은 푸틴 대통령과 메드베데프 전 대통령이 과거 공개석상에서 했던 “대규모 숙청은 용납될 수 없는 범죄”라는 내용의 발언들을 인용한 팻말을 부조 옆에 세워 놓았는데, 이는 현 정권 스스로도 한때 스탈린의 범죄를 인정했음을 상기시키며 아이러니를 부각하려는 의도였다. 러시아 정교회 내부에서도 드물게 스탈린 찬양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앞서 언급한 알타이의 정교회 사제 알렉산드르 미쿠신은 지역신문 기고와 SNS를 통해 바르나울의 “스탈린 센터” 개설을 공개 규탄했는데, 그는 “스탈린 치하에서 수천 명이 처형되거나 투옥되었다. 희생자의 피로 얼룩진 독재자를 찬양한다는 것은 역사를 모르는 행동”이라고 일갈하며 자신의 가족 또한 스탈린 시절 ‘쿠라크’로 몰려 유배된 아픈 과거가 있다고 밝혔다. 이러한 반대자들은 한목소리로 “피로 쓴 역사를 미화해서는 안 된다”, “동상에 바칠 돈이 있으면 차라리 국민 생활 개선에 쓰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으며, 일부는 스탈린 동상 복원 움직임을 가리켜 “현 정권이 공포정치 부활을 정당화하려 한다”는 날선 비판까지 제기하고 있다
한때 소수에 불과했던 스탈린 동상 부활에 대한 반대 움직임은 갈수록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온라인 서명운동이나 거리 시위로 항의의 뜻을 보이는 시민들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여론조사 수치에서 드러나듯 현재 러시아 내 다수 대중은 스탈린을 긍정적으로 재평가하는 분위기다. 역사학자들은 이를 두고 “러시아 사회의 면역체계가 약해져 (스탈린 격하에 대한) 항체가 사라지고 있다”는 우려를 표한다. 다시 말해, 공포정치의 교훈을 잊은 사회가 되고 있다는 지적인데, 반면 상당수 러시아인들은 “역사를 바로세운다”는 명분 아래 동상 복원을 지지하고 있어 사회적 기억을 둘러싼 갈등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오늘날 “가장 위대한 위인” 조사에서 부동의 1위를 차지할 만큼 스탈린의 위상이 올라간 상황에서 동상과 기념비를 둘러싼 이념 논쟁은 러시아의 현재진행형 역사 쟁점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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