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타이의 왕실 사냥꾼 베르톨드가 자기 친구가 자신한테 맡긴 나이팅게일이라는 3마리의 새들이 다 도망쳐버려 찾아달라며 '빈 새장' 3개를 주는데, 그 새들은 브라닉 오른쪽 소나무숲 쪽으로 갔다는 증언을 들었으며 소나무를 좋아한다고 하니 새들의 울음소리가 크게 들리는 쪽에 빈 새장(함정)을 설치해주면 금방 잡힌다고 한다.
그리고 베르톨드는 자신이 그 새소리를 들려주는데...
1. 사냥꾼 베르톨드의 새소리 시범 (헛웃음이 나왔다 ㅋㅋ)
2. 실제 현장 새소리 (꽤 비슷해 엌ㅋㅋㅋㅋ)
현장에 도착해서 새소리가 들려도 이 게임은 정말 불친절하게도 그곳에 가면 설치하라는 커맨드버튼 조차 띄어주지 않아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를 수도 있다. 이 때 우리가 직접 아이템창으로 가서 빈 새장 '1개'를 '버리기'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1시간 대기를 타거나 다른 새를 찾으러 돌아다니다 보면 함정을 설치한 곳(마커 자동으로 찍힘)에 나이팅게일이 알아서 잡혀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몇가지 더 일러둘 것은 버그가 빈번한 게임으로써 빈 새장을 2~3개씩 버리면 버그의 위험이 있으니 꼭 1개씩 버릴 수 있도록 조심하고, 잡아야 될 새는 총 3마리이므로 잘 알아두자.
명예가 천국까지 닿았던 웅장함의 도시이자, 보헤미아의 왕가의 중심지. 세계의 여러 위대한 도시 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도시이며, 상업적으로도 부유하고 군사적으로도 강력했으며, 아름다움도 갖추고 있었고, 탑들은 다른 소도시들보다 높게 솟아있었다. 리부셰 공주와 그녀의 남편이자 프르셰미슬 왕조의 시조인 프셰미실에 의해 건립되었으며, 처음에는 흐라드차니라는 지역에 있던 석조 성이었다. 그러나 나중에 여러 지구가 추가되었고 카를 황제 집권 시기에 들어서 신(新)시가지 전역이 블타바 강 반대편에 지어졌으며, 당시 세계에서 가장 컸던 석교로 구(舊)시가지와 연결되었다. 많은 돌과 회반죽으로 만들어졌지만, 전설에 따르면 더 높은 강도를 위해 계란 수천 개가 쓰였다고 한다.
인구에서는 다양한 면을 보였다. 체코인들이 압도적으로 많기는 했지만, 상인과 무역상들 사이에서는 독일인도 많이 찾아볼 수 있었다. 독일인들은 그들만의 지구에 따로 거주했으며, 심지어는 유대인들도 프라하 안에 그들만의 작은 '소도시'를 형성하고 있었고, 기독교인들은 함부로 발을 들여놓을 수 없었다.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설립된 수도원들은 엠마오, 스트라호프, 클라로프에 있는 것들이 유일했으며, 석조 교회는 손에 꼽을 수 없을 정도로 흔했다. 성 비투스와 아달베르트에 봉헌된 가장 위대하고 명성있는 수도원이 곧 세워질 것이다. 5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건설되었으며 곧 완공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카를 황제의 집권 아래 대학교 또한 설립되었는데, 금기서화의 사예에 대한 교육을 제공하였으며, 세계 각지에서 외국인들이 공부하러 오기도 한다. 만약 인생에서 단 하나의 도시만 방문할 수 있다면, 반드시 프라하로 달려가야 한다. 세계에서 그보다 아름다운 도시는 없으니까.
The seat of the kings of Bohemia, a city of grandness, whose glory reaches to the heavens. Amongst the great cities of the world, it is the greatest, rich in commerce and strong in arms, and endowed with beauty, the towers of which rise above other towns. Founded by Princes Libusse and Přemysl, her husband and the father of the Přemyslid Dynasty, with a castle of stone at a place called Hradčany, to which later quarters were adjoined and during the reign of Emperor Charles the whole of the New Town was built on the opposite bank of the Vltava River, with the largest stone bridge the world had ever seen connecting it to the Old Town, made of much stone and mortar, to which, according to the legend, thousands of eggs were added for greater strength.
The populations if of a diverse nature. The Czechs dominate, but many a German can be found amongst merchants and tradesmen, who live in their won quarter, and even the Jews have been granted their own "town" within Prague, into which no Christian dare step foot. To celebrate the glory of God, the One and Only, monasteries were founded at Emmaus, Strahov, and Klarov, and churches of stone are so numerous that you could not count them on two hands. The greatest and most renowned of all, consecrated to Saints Vitus and Aldabert, shall soon stand, for it has been being constructed for nearly fifty years and soon shall be completed. Under Emperor Charles a University was founded as well, which provides learning in four arts, and from many distant lands do foreigners come to study. If one was to visit only one city in life, may on make haste to Prague, for there is no more beautiful city in the world.
Ⅰ. 기사 레몽은 푸아투 백작의 절친한 친구였습니다. 한 번은 둘이 함께 멧돼지 사냥을 나섰는데, 그만 푸아투 백작이 성난 멧돼지에게 공격당해 말에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용감한 레몽은 한달음에 달려가 친구를 구하기 위해 성난 짐승을 죽이려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공격은 멧돼지의 등에 맞고 튕겨 나가 그만 그의 친구를 죽이고 말았습니다. 무슨 짓을 해버렸는지 깨달은 레몽은 겁에 질려 숲속으로 달아났습니다. 그는 친구의 죽음에 슬퍼하며 울었죠. 자기가 고대의 예언에 따라 사악한 마음을 통해 저지르게 된 일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요. 목이 말랐던 그는 물을 마시고 휴식을 취하기 위해 숲속의 호숫가에 무릎을 굽혀 앉았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호숫가에 앉아있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보게 되었습니다. 여인은 바로 레몽에게로 다가와 기사가 이 깊은 숲속에서 찾는 것이 무엇이며 왜 이리 슬퍼하고 있는지 물었습니다. 그녀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긴장이 풀린 레몽은 사랑에 빠져 그녀에게 불운한 사건의 전말을 모두 이야기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바로 여인에게 청혼하였고 멜리진이라 하는 이 여인은 그의 청혼을 받아들였지만, 결혼한 후 매주 토요일엔 자신의 방에 들어오지 말 것이며 그날만은 자신을 가만히 내버려 둘 것을 신신당부하였습니다.
그 순간 이후 기사는 그의 신부와 함께 귀환하여 행운만을 맞이하였습니다. 그는 가문의 숙적들을 모두 패배시키고 오명을 씻어냈으며 빼앗겼던 가문의 많은 성과 영지들을 되찾아 자신과 가문의 명성을 퍼트렸습니다. 그의 용맹함과 업적에 감명받은 영주는 그에게 원하는 것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기사는 사슴 가죽 안에 들어갈 만큼의 영지를 하사받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영주는 웃으며 흔쾌히 그의 청을 승낙하였습니다. 멜리진이 그에게 사슴 가죽을 길게 잘라 줄로 만들라 조언해준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말이죠. 그녀는 마법으로 그 줄을 더 늘려 많은 영지를 받아내고 그 영지 한가운데 샘이 솟게 하여 땅에 물을 주고 매년 풍작을 이룰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멜리진은 또 다른 마법으로 그녀와 레몽의 집인 위대한 뤼지냥 성을 축조하였습니다.
Knight Raymond was a good friend of the Count of Poitiers. Once they went together to hunt wild pigs, but the Count of Poitiers was attacked by a raging boar and knocked from his horse. Brave Raymond rushed to save his friends and tried to kill the enraged beast, but his blow glanced off its back and instead of taking down the creature, he killed his friend with one blow. Aghast at his deed, Raymond fled deep into the forest, where he grieved over the death of his friend, little knowing that he had acted according to an ancient prophesy, and through an evil heart. Thirsty, he knelt down by a pool in the woods to take a drink and rest a while, whereupon he saw a most beautiful maiden sitting by the pool. She came to him at once and asked what a knight was seeking so deep in the woods and why he was so sad. Disarmed by her beaut, Raymond fell in love with the girl and told her the whole story of his misfortune. Then right away he asked for he hand in marriage and the maiden, who was called Melusine accepted his offer, but she warned him that her husband must never enter her chamber on a Saturday and must leave her alone all day.
From the moment that the knight returned from the forest with his bride, he met with only good fortune. He defeated all the old rivals of his family, put to rights all wrongs against them and got back many castles and estates that others had stolen from his glorious family, thereby exalting his own good name and that of his line. Raymond served his liege so bravely that the lord asked him what he would like to have for his services.
Whereupon the knight replied that he wished to have in freehold as much land as would fit within the skin of one stag. His liege lord laughed and gladly agreed, little knowing that Melusine had advised him to cut the skin of a stag into thin ribbons and wave a long rope from them. This she then made even longer by a magic spell, so that it would hold an even greater tract of land. Melusine made a spring rise up in the middle of this land to water the earth and ensure a good harvest every year. By other spells, Melusine erected the great Castle Lusignan, where she and Raymond made their home.
Ⅱ. 기사 레몽과 멜리진은 많은 아이를 낳아 행복한 가정을 꾸려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모두 몸에 가문의 표시가 새겨졌는데 그들은 모두 나중에 용감한 기사와 훌륭한 왕으로 자랐습니다. 각설하고 본론으로 돌아와, 레몽은 행복한 나날은 보내던 중 멜리진에 왜 토요일엔 그녀의 방에만 있어야 하는지 또 그녀가 거기서 무엇을 하는지 점점 궁금증에 사로잡히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어느 토요일 레몽은 숨어 그녀가 방으로 들어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단검으로 문에 구멍을 뚫어 방안을 훔쳐보았습니다. 방안의 풍경은 충격적이었습니다. 멜리진은 물이 담겨있는 커다란 욕조 안에 기대 누워 있었지만, 그녀의 허리 밑으로는 사람의 다리가 아닌 해룡의 바늘 덮인 꼬리가 있었습니다. 두려움이 그의 심장을 사로잡았고 깜짝 놀란 레몽은 자기도 모르게 비명을 내뱉었습니다. 그의 비명을 들은 멜리진은 자신의 남편이 약속을 저버렸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녀는 비통한 슬픔에 빠져 용으로 변신하여 창문 밖으로 날아가 사라졌습니다. 그 이후로 레몽은 다시는 자신의 아내를 보지 못하였죠.
아주 오랜 시간 후까지 말이에요. 멜리진은 어느 날 레몽에게 다시 나타나 그가 사흘 후에 죽을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사흘이 지나자 레몽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날 이후로 저주받은 멜리진은 몰래 그녀의 후손들을 보호해주었고 그들이 죽기 사흘 전에 앞에 나타나 미리 죽음을 알려주게 되었습니다.
미리 말했듯이, 많은 영명 높은 가문들이 레몽과 멜리진의 핏줄로부터 유래하였는데 그중 가장 명성 높고 존경받으며 가장 중요한 가문이 보헤미아의 왕 벤체슬라스와 헝가리의 왕 지기스문트의 가문인 룩셈부르크가 입니다. 이것이 이 가문의 기사들이 종종 용 문양의 장식을 지니고 토너먼트를 참가하는 이유이고요. 룩셈부르크가의 인물은 약간일지라도 용의 피가 흐르므로 성격이 불같고 싸우길 좋아하며 다혈질적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화나게 하거나 그들과 분쟁하거나 그들의 의견에 반대하는 것은 신중하지 못한 일입니다.
Knight Raymond and Melusine lived happily and had many children together, all of whom were marked by the mark of the family, though all became brave knights and wise rulers. In time, though, Raymond began to be consumed by curiosity as to what his wife was doing alone in her chambers on Saturday and why only she could be there on that day. So one Saturday he hid and waited for his wife to come to her chambers. With his knife he cut a slit in the door through which he could see inside. And what he spied there horrified him. In her room was a big tub of water in which Melusine reclined, but from the wait down she had the body of a scaly creature - a serpent! Fright gripped his heart and he called out in surprise. At which Melusine realised that her husband had betrayed him [sic] promise to her. She was seized by terrible sadness, turned into a dragon and flew out the window. And from that moment Raymond never saw his wife again...
Until many, many years later, she appeared to him to tell him he would die in three days time. And so it came to pass, and Raymond died. From that day forth cursed Melusine secretly guards the lives of all the descendants of her line, and appears to them three days before their death to foretell it.
As was foretold, many glorious princely families descended from the line of Raymond and Melusine. Among the most renowned, respected and foremost of them is the Luxembourg family, including Wenceslas IV, King of Bohemia, and his brother Sigismund, King of Hungary. That is why the knights of this clan often carry in tournaments an ornament in the form of a dragon, and because they themselves have a little dragon's blood in them, it is not prudent to anger them or enter into conflict with them or disagree with them, because their lineage makes them quick-tempered, quarrelsome and hot-blooded.
보헤미아족의 지도자인 크로크에게는 카지, 테타, 리부셰라는 세 명의 딸이 있었다. 카지는 식물과 약초에 대한 방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의학에도 조예가 깊었다. 테타는 그 누구보다도 신들과 여신들에 대한 신앙심이 깊어 그들에게 온갖 제물을 바쳤다. 막내인 리부셰는 지혜롭고 사고력이 뛰어남에 은혜와 존경을 받았으며 예언의 힘을 타고나 미래를 보거나 예언을 하곤 하였다. 또한 부족 내 갈등이 있을 때마다 뛰어난 논리로 피해자들에게 평화를 가져다줄 수 있었기 때문에 크로크가 세상을 떠나고 왕좌에 앉아 부족을 지혜로 다스리게 된 것도 그녀였다.
풍요롭고 평등하던 시절이었지만 "긴 머리에 짧은 사고, 여인에게 지배받는 사내들이여 부끄러운 줄 알 거라." 라는 말이 있듯이 그녀의 통치는 많은 사내의 의지와는 정반대였다. 극심한 슬픔에 빠진 리부셰는 대회의를 열어 그녀의 자매들과 방방곡곡의 원로 지도자들을 불러 모아 말하였다.
"그대들은 주어진 자유에 감사할 줄 모르고 여인을 지도자로 맞이한 것을 부끄러워할 줄 밖에 모르는구나. 그대들이 정 원한다면 내 말을 따르고 내 조언을 듣겠다는 조건 하에 그대들에게 사내놈 지도자, 공작을 하사하겠노라."
소식을 듣고 기뻐진 방방곡곡의 지도자들은 그녀의 말을 따를 것을 약속하였고 리부셰는 그들에게 말에게 안장을 놓을 것을 명령한 후 말이 가고 싶은 데로 가도록 두었다. 그곳에서 그들의 새 공작, 황소 한 무리를 치고 있을 농사꾼을 만나게 될 것이니, 그녀가 예상한 대로 말은 그들을 프르제미슬이라는 이름의 농사꾼에게로 이끌었다. 그들은 농사꾼에게 말했다.
"리부셰 공주님과 위대한 체코의 모든 백성은 운명이 그대와 그대의 자손들에게 하사한 공작위를 받들고 저희와 함께 갈 것을 간청하는 바입니다."
그것을 들은 프르제미슬은 말했다.
"그대들이 굳이 오늘 아침에 도착했다니 참 안타깝소. 만약 내가 이 들판에 쟁기질을 마쳤다면 이 땅에는 먹을 것이 넘쳐났을 것이오. 허나 그대들이 날 방해하게 되었으니 이제 이 땅은 종종 기근을 겪게 될 것이오."
그리고 그가 이어 말했다.
"내가 그대들에게 리부셰 공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다시 하겠소. 당신네가 여인의 조언을 듣기 싫어했기에 이제 나와 내 자손들의 철통같은 통치를 겪게 될 것이오."
그 말을 끝낸 후 그는 그들과 함께 리부셰에게로 갔다. 그는 리부셰와 결혼을 하여 여러 해 동안 지혜롭게 나라를 다스렸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엔 그의 자손들이 그 자리를 물려받으며 위대한 프르제미슬 왕가가 탄생하였다.
Krok, ruler of the Bohemian tribes, had been blessed with three daughters. Kazi, Teta, and Libusse. Kazi possessed vast knowledge of all matter of flora and herbs and was wise in the arts of healing, Teta above all others worshipped the gods and goddesses and made unto them all manner of sacrifices, and the last daughter enjoyed great favour and respect, for wisdom and reason did serve her well, and having been endowed with the power of soothsaying, oft did look into the future and make prophesies. When old Krok died, it was she who sat upon the throne and ruled wisely, for she could resolve conflict with her esteemed reasoning and bring peace to all aggrieved parties.
It was a time of abundance and equality between all; however, her rule went against the will of many men, for as is told "long of hair and short of reason, and shame be upon men who are ruled by a woman." Libusse, suffering great pangs of sorrow, convened a great congress to which she did invite her sisters and the elder rulers from throughout the land. And she did say unto them, "You do not appreciate freedom and for you it is a great shame for a woman to rule over you. Thus, I shall give unto you a Voivode—a man—upon condition that you listen to my words and heed my advice.”
The joyous rulers from throughout the land did swear to heed her words, and she did order them to place saddle upon her steed and allow him to go whither he may roam. At this place shall they lay eyes upon their new Voivode, a ploughman, who shall be driving a team of oxen. And it did happen as she had foreseen, and the horse did truly lead them to the ploughman, who bore the name of Přemysl. They said unto him, “Princess Libusse and all of the people of the great Czech hereby do entreat you to come with us and accept the rule that fate has bestowed upon you and your descendants.” And in reply to the messengers Přemysl did say, “It is regrettable that you have come this very morning. For if I could finish ploughing this one field, bread would be had in great abundance for all time. But alas, you have disturbed me in my task and this land shall oft know great hunger.” And then he said unto them, “I shall repeat the words that Libusse has said unto you. As you did not desire to heed a girl’s advice, now it shall be my lineage that rules over you with an iron rod.” Thereafter, he travelled with them to Libusse, whose fair hand he took in marriage, and for many years ruled wisely and well. After him his sons ruled in his stead, and thus was established the great and esteemed Přemyslid Dynasty.
벽으로 둘러싸인 거주지가 등장한 지 거의 500년이 흘렀고, 이는 나중에 즐리칸족 땅의 경계와 주요 무역로를 보호하는 성으로 발달했으며, 더 나중에는 소도시까지 생겨났다. 하지만 150년 전, 이 성은 잿더미가 되었으며, 쿠트나호라나 프라하조차 부럽지 않을 정도로 튼튼한 벽을 가진 더 아름다운 형태로 새롭게 지어졌다.
라타이의 강화된 소도시는 왕의 지배 아래에 놓였으며, 영지로 인정을 받았다. 룩셈부르크의 요한의 집권 동안 라타이는 리파의 헨리가 통치했으며, 그는 그들이 퍼크스타인이라고 부르던 아래쪽 성을 지었다. 오늘날 라타이는 리파의 케이폰 영주가 성인이 되어서 모든 소도시와 그것들을 둘러싼 토지를 영지로서 물려받을 때까지 하누쉬의 관리 아래에 놓여있다.
라타이에는 다양한 종류의 소매상인들(도살업자, 대장장이, 재단사, 직공, 갑옷장인)이 활동하며 매달 큰 시장이 열린다. 라타이는 행정의 중심지이기 때문에 사형 집행인을 직접 고용할 수가 있으며, 강력한 지방 자치 수비대를 지원하고 있다. 라타이의 커다란 석재 교회는 성 마태오에게 봉헌되었다.
Nigh five hundred years have passed since the appearance of a walled settlement, which later grew into a castle guarding the borders of the land of the Zlicans and its main trade route, and even later it bloomed into a town, which, however, one-hundred-and-fifty years ago burned to the ground and was built anew in even more beautiful form, with strong walls that not even Kutna Hora or Prague need be ashamed of.
The fortified town of Rattay fell under the possession of the King, and was granted as a fiefdom, and during the reign of John of Luxembourg it fell under the rule of Lord of Henry of Lipa, who then had built a lower castle that they called Pirkstein. Today, Rattay is under the administration of Hanush until young Lord Capon of Lipa reaches adulthood and unto him shall be granted the whole town and its surrounding estates as a fiefdom.
In Rattay all manners of tradesmen flourish - butchers, smiths, tailors, weavers, and armourers - and great markets are held here every month. Rattay is an administrative centre and thus can afford to employ its own executioner and support a strong municipal garrison.Its large stone church is consecrated of Saint Mathew.
우리 장엄한 역사의 가장 오래된 기록에 따르면, 보헤미아의 땅은 비옥하고 풍요로워 많은 이들의 피난처가 되었으며, 아름다움과 풍족함에 있어서 다른 나라에 비해 월등했다. 첫 번째 천년기가 끝나기 전에는 대모라비아 제국과 통합되지 않은 보헤미아 공국이 공존하였는데 후자는 프르셰미슬 가문이 통치했다. 이 땅의 수호성인인 성 바츨라프는 프르셰미슬[각주:1]가문 출생이며, 마찬가지로 프르셰미슬 성씨인 그의 동생 볼레슬라프 1세는 권력을 공고히 하고 이 땅을 통일하였다. 그의 아들 볼레슬라프 2세는 프라하의 교회를 소교구에서 교구[각주:2]로 승격하여 신성 로마 제국에 보헤미아가 편입되었으나 프르셰미슬 가문의 어느 군주도 아직까지는 왕의 칭호를 받지 못했다. 첫 번째로 왕의 칭호를 받은 이는 브라티스라프 2세로 그는 밀라노 공격 당시에 황제를 원호한 공을 인정받아 왕위를 하사받았다. 그러나 그의 후손들은 그러지 못했으며 훗날 오타카르 1세가 왕위를 쟁취해내기 전까지 왕의 신분이 아닌 공작의 신분으로 통치했다. 왕위를 얻은 오타카르 1세가 그 후에 모라비아를 차지하는 것은 당연지사였겠으나 그는 그러지 않았고, 현명하고 평화롭게 그의 아들에게 모라비아 변경백위를 물려주었다. 모라비아 변경백령은 후에 신성 로마 제국의 땅이 아니라 보헤미아 왕국에 속하는 영토가 되었다.
하지만 프르셰미슬 왕조는 오래가지 못했고, 살인자의 손에 들린 칼에 위대한 왕조는 죽임을 당하고 빈 왕좌는 룩셈부르크 가의 손에 떨어지게 되었다. 룩셈부르크 가문은 다른 여러 영토를 보헤미아 왕국에 병합하여 나라의 강역이 거의 북해에서 지중해까지 닿게 되었다. 보헤미아의 가장 명명 높은 왕이자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인 카를 4세는 그 치세에 있어서 모든 영지에 큰 부와 풍족함을 누리게 해 보헤미아의 명성이 널리 퍼졌고, 프라하 교회를 주교구에서 대주교구로 승격시켰으며, 프라하 대학과 구시가지를 연결하는 새로운 다리 및 새로운 거주구 건설을 지시했다. 프라하 대학은 많은 지식인을 배출하였으며, 프라하는 제국의 중심이 되었다.
카를 4세의 장자 벤체슬라스 4세는 풍족함과 막대한 부를 누리는 땅을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았으나 그는 현명한 통치보다는 창녀와 음주에 더 전념했으며 주교들 사이의 관계를 가르고, 로마에도 등을 돌리게 했다. 그의 군주로서의 무능함은 극에 달하여 아버지의 재능을 물려받은 이복동생인 지기스문트는 그를 감옥에 가두고 폐위했다.
주석: 여기에 벤체슬라스왕에 대해 적인 이야기는 뻔뻔하기 짝이 없는 거짓말이다. 지기스문트 그 여우 같은 놈은 창녀의 자식에, 이 땅의 배신자다! 벤체슬라스 왕이야말로 진정한 국왕이시다!
프르셰미슬 왕조(체코어: Dynastie Přemyslovců)는 9세기부터 1306년까지 이어진 보헤미아의 체코인 왕조이다. [본문으로]
가톨릭교회를 지역적으로 구분하는 한 단위. 주교(主敎)를 중심으로 하여 대주교구, 주교구 따위가 있다. [본문으로]
배우자: Elizabeth of Pomerania (1363년–1378년), Anna von Schweidnitz (1353년–1362년), 앤 오브 바바리아 (1349년–1353년), 블랑쉬 오브 발로이스 (1329년–1348년)
자녀:바츨라프 4세, 지기스문트, 안나 체스카 왕녀, 존 오브 괼리츠, Karel of Bohemia, Margaret of Bohemia, Queen of Hungary, Catherine of Bohemia, Václav Lucemburský, Elisabeth of Bohemia, Margaret of Bohemia, Burgravine of Nuremberg
부모: 얀, 엘리슈카 프르셰미슬로브나
- 룩셈부르크의 요한 왕의 아들이자 벤체슬라스를 낳은 룩셈부르크의 카를 4세는 룩셈부르크 왕조에서 보헤미아의 왕(1346년-1378년)이 된 두 번째 사람이었고 신성 로마 제국 황제의 작위(1355년-1378년)를 얻은 첫 번째 사람이었다. 그 외에도 그에게는 모라비아의 변경백, 룩셈부르크의 공작, 이탈리아의 왕, 로마인들의 왕, 부르고뉴의 왕 등의 많은 작위가 있었다.
Charles IV of Luxembourg, born Wenceslas, son of King John of Luxembourg, was the second member of the Luxembourg dynasty to become King of Bohemia (1346 - 1378) and the first to attain the title Holy Roman Emperor (1355 - 1378). He held many other titles besides: Margrave of Moravia, Count of Luxembourg, King of Italy, King of the Romans and King of Burgundy.
그는 외교력과 박식함으로 명망이 높았고, 자신의 자리를 공고히 하고 가문을 유럽, 특히 보헤미아[각주:1]와 모라비아[각주:2], 독일에서 몰락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했다. 그는 여러 국어를 유창하게 말할 수 있었고 프랑스 궁중에서 다름 아닌 미래의 교황인 클레멘스 4세를 가르쳤다.
Renowned for his diplomatic skills and erudition, he actively endeavoured to consolidate his position and ensure the survival of his line in Europe, especially in Bohemia, Moravia and Germany. He was well-versed in several languages and at the French court he was tutored by none other than the future pope, Clement VI.
그의 재위 동안, 프라하와 보헤미아 왕국은 중대한 변혁을 겪었고,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중심지로 떠올랐다. 이러한 이유로, 그의 재위 기간은 황금시대라고 부른다. 그는 여러 훌륭한 건물들의 건설을 시작했고, 카를 대학, 카를 다리, 카를슈타인 성 등 자신의 이름을 붙였다. 그는 종교적인 믿음을 사회에 널리 강조했다. 그는 성 벤체슬라스, 성 지기스문트, 성 비투스 신앙을 혁신하고 이 성인들을 많은 교회 건물에, 특히 프라하 대성당에 봉헌했다.
During his reign, Prague and the lands of the Bohemian Crown underwent a major transformation, becoming a powerful political, economic and cultural centre. For this reason, this period of his reign is known as the Golden Age. He initiated the construction of many superb edifices, which thus bear his name, including Charles University, Charles Bridge and Karlstein Castle. He was keen to emphasise the role of religious faith in society. He renewed the cults of St. Wenceslas, St. Sigismund and St. Vitus, consecrating various Church buildings to them, among others Prague Cathedral.
그는 네 번 결혼했고 열 세 명의 아이가 있었지만, 대부분이 유아일 때 죽었다. 그의 자식 중 가장 유명한 이들은 모두 보헤미아의 왕국의 지배자가 된 벤체슬라스와 지기스문트이다.
He married four times and had thirteen children, most of whom died in infancy. The most illustrious of his offspring were his sons Wenceslas and Sigismund, who both became rulers over the lands of the Bohemian Crown.
중부 유럽에 있었던 역사상의 국가. 현재는 체코의 서부에 해당하는 지방으로 엘베강의 상류 지역에 위치한다.[본문으로]
체코 동부에 있는 지방. 도나우강의 지류인 모라바강이 관류하고 있어 농업, 목축, 임업이 활발하며 북부는 석탄, 철강의 산지로 유명하다.[본문으로]
형제자매:지기스문트, 존 오브 괼리츠, Elisabeth of Bohemia, 안나 체스카 왕녀, Catherine of Bohemia(/Katharina von Luxemburg), Margaret of Bohemia(Queen of Hungary), Margaret of bohemia(Burgravine of nuremberg)
배우자: 소피아 오브 바바리아 (1389년–1419년), 조안나 오브 바바리아 (1370년–1386년)
부모: 카를 4세, Anna von Schweidnitz
- 보헤미아의 통치자이자 로마 제국의 전 황제. 하지만 많은 독설가가 그는 진정한 왕이 아니라고 말하며 그의 이복형제 지기스문트의 편을 든다. 서기 1361년, 그는 황제 카를 4세와 그의 아내 슈바이트니츠의 안나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장남의 권리로 그의 아버지로부터 왕위를 물려받았다. 고작 2살에 그는 보헤미아의 왕위에 올랐으며, 15살에는 황제로 즉위했다. 이는 강력한 항의를 불러일으켰는데, 선왕이 죽기도 전에 새로운 왕을 왕위에 앉히는 것은 평범한 일이 아니었으며, 어린 왕은 성인이 될 때까지 제대로 통치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후일 왕이자 황제였던 카를이 죽고 나서 벤체슬라스는 정당하게 두 왕좌에 올랐다. 처음에는 잘 통치하는 듯했으나, 형편없는 고문관들과 어리석은 유럽 영토의 통치자들이 그의 마음을 어지럽혔다. 곧 왕이 처음에 보였던 열의는 사라지고, 술과 사냥에만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이리하여 왕국의 새로운 통치자를 향한 불만은 커졌고, 벤체슬라스는 갈등을 조정하는 대신에, 그로부터 피해 다니기 시작했다. 그에게 이 사태를 해결할 이유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당시 아비뇽에 그들만의 교황이 있던 프랑스를 자극하고 싶지 않아서 크라운도 받으러 가지 않았다. 또한 그는 모라비아의 변경백 영지의 분노를 사서 그가 나라의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 모라비아의 요프스트가 그를 가둬놓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갈등이 해소되기는커녕 그의 참된 통치에 대한 무관심은 심해져만 갔고, 많은 귀족이 항의하기 시작했으며, 당시 헝가리를 통치하고 있던 그의 다른 형제 지기스문트가 왕위에 오르는 것이 낫다고 여긴 귀족 연맹이 벤체슬라스를 왕위에서 끌어내기 위해 결성되었다. 벤체슬라스는 귀족들이 보내는 경고와 협박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으며 그가 원하는대로 통치, 정확히는 유흥거리에 전념하는 일을 계속했다. 그리고 결국 귀족들이 인내심을 잃고 그에 대한 반란이 일어났을 때, 그는 영토의 통치를 맡겼던 지기스문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지기스문트는 도와주지 않고 벤체슬라스의 성을 빼앗고 그를 가두었다. 지기스문트는 지배권뿐만 아니라 왕위 또한 차지했고, 왕국에 법과 질서가 회복되는 것에 기뻐한 일부 귀족들은 그를 환영했다. 오늘날, 적갈색 여우, 지기스문트가 보헤미아를 불법 점유하고 있는 동안, 벤체슬라스 왕은 여전히 지기스문트의 포로로 잡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