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자매:지기스문트, 존 오브 괼리츠, Elisabeth of Bohemia, 안나 체스카 왕녀, Catherine of Bohemia(/Katharina von Luxemburg), Margaret of Bohemia(Queen of Hungary), Margaret of bohemia(Burgravine of nuremberg)
배우자: 소피아 오브 바바리아 (1389년–1419년), 조안나 오브 바바리아 (1370년–1386년)
부모: 카를 4세, Anna von Schweidnitz
- 룩셈부르크의 벤체슬라스 4세는 명군 카를 4세의 아들이다. 그는 보헤미아의 왕위를 상속받았으며 독일의 왕위를 선거를 통해 얻었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의 통치 실력을 상속받지는 못했다. 그는 평생 동안 어릴 때부터 통치술을 교육받았는데도 불구하고 왕족의 의무를 모르고 질병에 시달리는 나약하고 게으르며 감정기복이 심한 군주로 알려졌다. 그는 사냥과 음주, 창녀와 궁전에서의 쾌락에 더 관심이 많았다. 그가 제위에 있는 동안, 보헤미아 땅에서는 그의 친족들(형제 지기스문트와 사촌들, 즉 모라비아 변경백들)과의 전쟁과 갈등이 벌어졌다.
변경백국 전쟁을 촉발한 사건은 벤체슬라스가 주인을 잃은 올로모우츠 대교구의 땅, 귀족들의 소유인 그 땅을 차지한 것이다. 요프스트의 지휘 아래, 모라비아 군주들은 지기스문트에 합류해서 공개적으로 왕에게 반란을 일으켰다. 이것은 올로모우츠 문제보다는 그동안 선제후들에 의해서 무능과 게으른 통치를 이유로 황제위를 박탈당한 벤체슬라스의 통치의 적법성에 관한 문제였다. 그는 이후에 수많은 양보를 하고 귀족들의 특권, 사실상 통치권을 그들에게 양도하는 수준의 특권을 줌으로써 보헤미아의 왕위도 잃게 되었다. 의무를 다하지 않는 그의 게으름은 두 번의, 첫 번째로 1394년에 체코 귀족들에 의한, 두 번째로 1402년에 형제 지기스문트에 의한, 유페 사건을 불러일으켰다(그럼으로써 그는 왕위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벤체슬라스는 처음에는 얀 후스와 그의 지지자들의 개혁 요구를 지지했지만, 그 개혁가가 교회에 의해서 화형대에서 타 죽도록 선고받았을 때 목숨을 구하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럼으로써 그는 나중에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반란(그리고 성공적이지 못한) 후스파 전쟁을 불러일으켰다. 그렇지만 그는 이 사건을 볼 때까지 오래 살지 못하고 1419년에 죽었다. 그의 죽음 이후, 그의 형제 헝가리의 지기스문트는 왕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모두가 그의 명분을 따른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는 왕위를 위해 싸워야 했고, 왕위를 차지하고 나서도 오래 누리지 못하고 죽었다.
배우자: Barbara of Cilli (1408년–1437년), 마리어 (1385년–1395년)
자녀: Elizabeth of Luxembourg, N. of Luxemburg, Prince of Hungary
- 카를 4세의 아들인 룩셈부르크의 지기스문트는 1387년부터 헝가리와 크로아티아의 왕이었고 1411년부터 독일의 왕이었으며 1419년부터 보헤미아의 왕이었고 1431년부터 이탈리아의 왕이었다. 그는 또한 슐레지엔의 영주였고 1419년부터 라우지츠의 변경백[각주:1]이었으며 가장 잘 알려진 바대로 1433년부터 1437년까지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였다.
Sigismund of Luxembourg, son of Charles IV, was King of Hungary and Croatia from 1387, King of Germany from 1411, King of Bohemia from 1419 and King of Italy from 1431. He was also Prince of Silesia, from 1419 Margrave of Lusatia and most notably Holy Roman Emperor between 1433 and 1437.
유년 시절, 그는 헝가리 궁정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정치의 냉정함을 빠르게 습득했다. 가문의 다른 구성원들처럼, 그는 적어도 한 번은 납치(헝가리 귀족들에 의해서)되었다. 헝가리 귀족들에 대한 신뢰를 버리고, 그는 보헤미아로 주의를 돌렸으며 이복형제 벤체슬라스와 적대 행위를 벌였다. 보헤미아 귀족 중 어떤 이들은 지기스문트가 형편없는 국왕을 몰아낼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그의 편을 들었고, 어떤 이들은 오랫동안 계속되는 전쟁 와중에 지기스문트와 그의 헝가리인 군대(대부분 쿠만인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보헤미아 영주들의 특히 모라비아 영주들의 도움을 받아 가면서 지속해서 보헤미아를 약탈했기 때문에 벤체슬라스의 편을 들었다. 지기스문트는 형의 왕좌를 차지하기 위해서 싸웠을 뿐만 아니라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가 되기 위해서 후스파와도 싸웠다. 그는 자신을 기독교의 수호자로 여겼고 1409년에는 드래곤 기사단을 창설해서 기독교 신앙에 반하는 모든 적들과 전쟁을 벌였다. (나중에 기사단의 일원이 되는 사람 중에는 드라큘라 이야기에 영향을 주는 가시공 블라드 3세 체페슈도 있다)
At an early age, he was sent to be educated at the Hungarian court, quickly mastering the tough conditions of politics. Like other members of his family, he was abducted at least once (in his case by the Hungarian nobility). Having lost faith in the Hungarian nobility, he turned his attention to Bohemia and became engaged in hostilities with his half-brother, Wenceslas. Some of the Bohemian nobility welcomed Sigismund, hoping he would rid them of their ineffective monarch, while others sided with Wenceslas, resulting in long-lasting wars, in the course of which Sigismund and his Hungarian army (consisting in no small part of Cuman mercenaries) repeatedly pillaged Bohemia, often with the help of Bohemian - and especially Moravian - lords themselves. Sigismund fought not only to seize his brother's throne, but also against the Hussites with the aim of seizing the Imperial crown. He regarded himself as the defender of Christianity and in 1409 even founded the Order of the Dragon to wage war against all enemies of the Christian faith. (One of the later members of the order was the infamous Vlad the Impaler, inspiration for the fictional Dracula).
벤체슬라스의 죽음 이후, 지기스문트는 후스파와 네 차례의 성전을 벌였지만 모두 성공하지 못했다. 그는 보헤미아와 모라비아 땅의 모든 백성의 신앙의 자유를 보장하라는 개혁가들의 주장에 동의하는 협약을 체결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죽었다.
Bohemia four unsuccessful crusades against the Hussites. He died soon after the signing of the Compacts a set of agreements with the reformers guaranteeing freedom of religious belief to every inhabitant of the lands of Bohemia and Moravia.
변경백에서 '변경'이란 나라의 경계가 되는 변두리의 땅, '백'은 우두머리라는 뜻인데 여기서는 프랑크 왕국ㆍ신성 로마 제국이 국경 방비를 위하여 군사 식민으로 설치한 변경 구역의 사령관이라는 의미이다. 관리 구역 안에서 행정ㆍ군사ㆍ사법상의 최고 권력을 가졌으며, 직위가 세습됨으로써 강력한 영방(領邦) 군주로 성장하였다.[본문으로]
황제 카를 4세와 그의 4번째 아내 포메른의 엘리자베트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인 지기스문트는, 형제 벤체슬라스와는 다르게 왕위 혹은 제위를 계승하진 못했지만, 그의 아버지로부터 교활함, 지성, 정치적 재능을 물려받았다. 미래의 왕인 그의 형제에게는 많이 부족한 자질이었다. 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적갈색 머리와 그가 젊은 시절에 많이 보인 교활한 면모 때문에, 그는 적갈색 여우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고, 이는 특히 후일 그의 적들에게 많이 불리게 되었다. 지기스문트는 학식에 조예가 깊고 통속적이었으며, 주된 유흥거리는 토너먼트였고, 7개 국어에 능통했다. 그는 1387년부터 헝가리의 왕위에 올랐고, 그가 당시 오를레앙의 군주와 약혼 관계에 있던 헝가리의 마리어와 결혼을 했을 때는, 많은 독설가가 그가 부당하고 강압적인 방식으로 그녀를 데려갔다고 했다. 사실이 어떻든 간에, 그는 헝가리를 지배할 그의 권리를 성공적으로 지켜냈다.
The son of Emperor Charles IV and his fourth wife Elizabeth of Pomerania may not have inherited the royal or imperial throne, as his brother Wenceslas did, but from his father his slyness, intelligence, and political talent he did inherit qualities his brother, the future king, was desperately lacking. For the ginger hair he was born with and his slyness which he did display many a time in his youth, he was given the sobriquet of The Ginger Fox, by which he was later called by his enemies especially. Sigismund is learned and popular, and his great indulgence is competing in tourneys, and seven languages of the world does he speak. Since 1387 he has been the King of Hungary, who was at the time engaged to be married to the Duke of Orleans, and thus many of evil tongue do say he took her by force and unjustly. However it may have been though, he successfully defended his right to rule Hungary.
이후에, 벤체슬라스가 통치에 무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는 모라비아의 요프스트와 결탁하여 벤체슬라스를 상대로 역모를 꾀하기 시작했다. 국왕의 의무를 다하지 않고 술과 사냥에만 시간과 노력을 쏟았던 어리석은 통치자보다는 지기스문트가 왕좌에 앉는 것이 낫다고 여겼던 체코 귀족들의 도움을 받아, 그는 벤체슬라스를 감금할 수 있었다. 하지만 벤체슬라스는 그의 다른 형제에 의해 풀려났고, 지기스문트의 보헤미아에서 권력을 잡으려는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 1396년, 지기스문트는 십자군을 소집하여 오토만 회교도에 대항하려 했으나, 모든 기독교도에게는 불행하게도, 그는 니코폴리스 전투에서 패하였고, 다시 헝가리로 귀환하게 된다. 그 후에, 그의 형제 벤체슬라스의 통치가 보헤미아를 쇠퇴시키고 그를 지지하던 귀족 세력들까지 반역을 일으키는 상황이 오자, 그는 지기스문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자 지기스문트는 실제로 강력한 헝가리 군대를 이끌고 보헤미아로 향했으나, 지역의 상황을 알게 되자, 그의 형제를 도와주는 대신에 그의 성과 마을을 점령하고 그를 감옥에 가두었으며, 왕좌를 차지하고 마침내 지역에 질서를 가져왔다. 많은 이들이 그를 반역자라고 하지만, 그의 공적을 치하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모든 점에 있어서, 그가 더 나은 통치자인 것은 확실했다.
Later, seeing his brother Wenceslas's [sic] inability to rule, he did collude with Jobst of Moravia and did commence to plot against Wenceslas, who ended up in his captivity with the great support of the Czech noblemen, who would rather see Sigismund sit upon the throne than an inept ruler who devotes his time and efforts more to drinking and hunting than to performing his royal duties. But Wenceslas was freed by his other brother, and thus Sigismund's plan to seize power in Bohemia failed. In the year 1396 Sigismund planned a Crusade and took up arms against the Ottoman Turks, but to the misfortune of all Christians he was defeated at the Battle of Nicopolis, and thus he removed himself to Hungary. Later, when his brother Wenceslas's [sic] rule in Bohemia deteriorated to the point where his own nobility rose up against him, he called upon his brother for assistance. And he did truly set off to Bohemia with a powerful Hungarian army, but being knowledgeable of the local situation, instead of helping his brother he occupied his castles and town and has his brother imprisoned, taking the crown for himself and finally bringing order to the land. Many do say he is a traitor, whilst others do praise his deeds. In all respects, however, he is indeed a much better ruler.
1402년부터 1403년까지 지기스문트가 보헤미아를 침공해 권좌를 얻으려 일으킨 전쟁에 대해서 남아있는 사료는 굉장히 적고 모호하다. 그러나 우린 스칼리체(질버 슈칼리츠, 실버 슈칼리츠)가 1403년 3월 23일 불타 지도상에서 사라졌음은 알고 있다. 지기스문트가 스칼리츠 앞에 세운 공성캠프에서 서명한 서류가 보존되어있는 덕분에 스칼리츠가 불타버린 정확한 시일까지 알 수 있다.
Little is known about the war in 1402 to 1403, when Sigismund invaded Bohemia and tried to seize power, and the records that do exist are fairly vague. However, we do know the fate of Skalice (Silberskalitz, Silver Skalitz) which was burned to the ground on 23 March, 1403. We know the exact date because a document was preserved that Sigismund signed that day in the siege camp.
지기스문트가 스칼리츠를 공격의 목표로 택한 이유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그곳에 은광이 있었고 스칼리츠의 영주가 벤체슬라스 4세의 지지자이자 국왕의 헤트만인 라체크 코빌라(라드직 코빌라)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벤체슬라스의 자금줄을 끊고 싶어했다.
Sigismund undoubtedly choose Skalitz because silver was mined here and the town was administered by the Royal Hetman, Racek Kobyla, a supporter of the king. Sigismund apparently wanted to disrupt the flow of money going to the Wenceslas.
전설에 따르면, 갑자기 불어온 엄청난 폭풍때문에 성을 포위한 적들이 다음 날 아침으로 공격을 미룬 사이에, 성에 숨어있던 코빌라와 그의 백성들은 성에서 빠져나와 도망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들은 폭풍이 불어온 기회를 틈타서 어둠에 몸을 숨기고 근처에 있는 라타이로 달아났다. 아침이 밝아오자 성을 공격한 지기스문트의 군사들이 텅 빈 성에서 찾은 것은 염소 한 마리 뿐이었다. 지기스문트는 마을과 성을 파괴해버렸고 성은 그 뒤로 재건되지 않았다. 오늘날엔 성의 토대만이 남아있다.
According to legend, Kobyla and his people, who were hiding from the attackers in the castle, were able to escape because of a great storm that blew up and forced the besieging army to wait until morning to take the castle. The castle defenders took advantage of the opportunity and under the cover of darkness fled to nearby Rattay. In the morning, the only thing Sigismund's men found in the empty castle was a goat (this is also in the game). Sigismund then razed the town and the castle to the ground and the castle was never rebuilt. Today, only the foundations remain.
1️⃣. 이 두 파일은 각각 게임 중 지정된 단축키를 통해 아이템을 추가(CheatPlayerAddItem.lua)하거나 스킬 경험치(CheatPlayerXPSkill.lua)를 올릴 수 있는 파일입니다.
2️⃣. 해당 파일을 프좀설치폴더 - Project.Zomboid - media - lua - shared 에 넣은 뒤에 플레이 중 단축키를 눌러 사용하시면 됩니다.
3️⃣. 다음 파일을 다운받아 그대로 사용하는 게 아닌 편집해서 사용하고 싶은 분은 해당 파일을 메모장으로 열어 주시고 코드 문법에 맞게 편집/저장 후 사용하시길 바랍니다.
4️⃣. Build - 41.65 / 한국어 번역본 Build - 41.60 작성된 코드로, 차후 업데이트로 변경되거나 추가된 사항이 있어 에러가 발생할 경우 편집 후 사용하시길 바랍니다.
5️⃣. 게임 플레이 중 실시간으로 해당파일의 코드를 편집하여 적용할 수 없습니다(게임 실행 전 파일을 수정하고 실행).
6️⃣. 아이템 추가 코드에서 수량을 한 개로 지정해도 애가 민감한 건지 모르겠는데 순식간에 2~5개씩 올라가버리는 현상이 있습니다. 이 때는 키보드가 아닌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단축키를 누르니 정상적으로 1개씩 추가되는 것을 확인하였으므로 참고바랍니다. (저 같은 경우는 키보드가 커세어이기 때문에 전용 매크로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7️⃣. 아래는 단축키, 아이템코드명, 스킬코드명등을 참고한 파일이나 사이트입니다.
➖아이템코드명은 프좀설치폴더 - Project.Zomboid - media - lua - shared - Translate - KO-ItemName_KO.txt 의 파일을 참고하였습니다.
Num 1 – 플레이어 무적 Num + – 동료 무적 Num 2 – 무한 전술시간 Num 3 – 무한 탄약 Num 4 – 재장전 없음 Num 5 – 아이템 갯수 무한 Num 6 – 장비 무한 내구도 Num 7 – 무게 제한 없음 Num 8 – 게임 속도 설정 (사용 전 원하는 값으로 슬라이더 조정) Num 9 – 플레이어 속도 설정 (사용 전 원하는 값으로 슬라이더 조정) Num 0 – 슈퍼 점프 Num . – 슈퍼 데미지 / 한방컷
Ctrl+Num 1 – 돈/비트 수정 (사용 전 원하는 값으로 수정) Ctrl+Num 2 – 무한 경험치 Ctrl+Num 3 – 스킬 포인트 수정(사용 전 원하는 값으로 수정) Ctrl+Num 4 – 퍽 포인트 수정(사용 전 원하는 값으로 수정) Ctrl+Num 5 – 최대 평판 Ctrl+Num 6 – 슈퍼노바 난이도: 배고픔 없음 Ctrl+Num 7 – 슈퍼노바 난이도: 갈증 없음 Ctrl+Num 8 – 슈퍼노바 난이도: 수면 부족 없음 Ctrl+Num 9 – 슈퍼노바 난이도: 어디서나 저장 Ctrl+Num 0 – 스텔스 모드 (적이 나를 볼 수 없음)
Alt+Num 1 – Exp 승수 (사용 전 원하는 값으로 슬라이더 조정) Alt+Num 2 – 데미지 승수(사용 전 원하는 값으로 슬라이더 조정) Alt+Num 3 – 동료 퍽 포인트 수정 (사용 전 원하는 값으로 수정) Alt+Num 4 – 언제든지 빠르게 이동 Alt+Num 5 – 잠긴 모든 컨테이너(자물쇠보관함) 잠금 해제 Alt+Num 6 – 캐릭터 생성: 최대 특성
2️⃣ 참고사항
"아이템 갯수 무한"은 1개 이상 품목에만 적용되며, '장비 무한 내구도'은 내구성이 떨어질 때 적용됩니다.
"무게 제한 없음"는 무게가 변할 때 적용됩니다.
"슈퍼 점프" 너무 높이 점프할 경우 낙하 피해를 입을 수 있으므로 "플레이어 무적" 옵션과 함께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돈/비트 수정"은 메뉴/인벤토리를 열 때 적용됩니다.
"스킬 포인트수정", "퍽 포인트수정", "동료 퍽 포인트 수정"의 변경된 값을 보기위해선 메뉴를 전환해야할 수 있습니다. 포인트 배분을 마쳤다면 스킬 포인트 점수가 남아 있다고 알림이 뜨지 않도록 0으로 설정하는게 좋습니다.
"최대 평판"은 평판이 변하거나 평판 메뉴를 열고 값이 변경된 것을 확인한 후 저장 및 다시 로드할 때 적용됩니다.
"언제든지 빠르게 이동"은 활성화되어 있는 동안 전투 중이나 슈퍼노바 난이도에서 빠른 여행을 할 수 있습니다.
"캐릭터 생성: 최대 특성": 캐릭터 생성 특성 화면에서 활성화하여 특성을 최대로 만들 수 있습니다.특성 값은 이 옵션의 영향을 받지 않지만 특성통계 설명에서는 항상 최대로 표시됩니다. 캐릭터 생성 후 모든 특성이 최대화되어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 트레이너는 스팀 및 에픽 스토어 버전을 기반으로 합니다. 윈도 스토어 버전에서도 동작할 수 있지만 윈도 스토어 버전에서는 테스트가 되지 않아 모든 옵션이 호환된다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